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며 '게으르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종종 신체적 활동이 적은 것을 나태함의 상징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게으름'이 사실은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지적 활동의 증거라면 어떨까요?
지적으로 활발한 사람들이 신체적으로는 덜 활동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인지 욕구(Need for Cognition, NFC)'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인지 욕구(NFC)란 "어려운 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는 경향"을 의미하는 심리학적 특성입니다.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 대학의 토드 맥엘로이(Todd McElroy) 등이 진행한 연구는 이 인지 욕구와 신체 활동량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매우 명확했습니다. 인지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덜 활동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러한 차이는 주말보다 주중에 더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주중에는 내적 동기에 따른 활동 패턴이 드러나는 반면, 주말에는 사회적 약속이나 계획된 여가 활동 등 외부 요인이 모든 사람의 활동 수준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높은 인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정신적인 자극을 만들어내며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반면, 낮은 인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그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한 외부 활동, 즉 더 많은 신체 활동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생각이 많은 사람은 내면의 세계에 몰두하느라 굳이 밖으로 움직일 필요를 덜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에 잠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뇌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놀라운 '기본 모드'를 발견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마이클 그라이시어스(Michael D. Greicius) 연구팀이 발견한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는 우리가 쉬고 있을 때, 즉 외부 과제에 집중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뇌의 특정 영역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멍 때린다'고 표현하는 순간, 뇌의 이 부분은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DMN이 활성화될 때 우리 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지적 활동을 수행합니다.
이는 '게으르게' 보이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머릿속에서 매우 바쁘게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등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과학적 증거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뇌의 두 가지 핵심 네트워크가 벌이는 자원 경쟁, 즉 '줄다리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경쟁 관계가 생각에 깊이 빠진 사람이 왜 자연스럽게 몸을 덜 움직이게 되는지에 대한 핵심 열쇠입니다.
우리 뇌 안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생각하는 뇌'와 '행동하는 뇌' 사이에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집니다. 앞서 언급된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는 생각의 뇌에, 외부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고 과제를 수행하는 '주의 네트워크(Attention Network)'는 행동의 뇌에 해당합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 두 네트워크는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즉, 하나가 활성화되면 다른 하나는 비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라이시어스 연구팀은 인지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DMN 사이에 "역상관 관계(inverse correlations)"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Doug Hyun Han)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운동 강도에 따른 뇌 네트워크 변화 연구는 이 줄다리기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정신적 자원과 신체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깊은 생각에 몰두할 때는 자연스럽게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것이 오히려 뇌의 효율적인 작동 방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하기를 즐기는 성향(인지 욕구)이 높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덜 활동적인 경향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쉴 때 오히려 활발해지는 '생각 뇌(DMN)'와 외부 활동을 관장하는 '행동 뇌(주의 네트워크)'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기에, 깊은 사색에 빠지면 자연스레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그저 흥미로운 가설이나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내용은 Journal of Health Psychology 와 PNAS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같은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실제 과학 논문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누군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면, 게으르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어쩌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치열한 지적 활동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