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음식

조선 곱창구이의 일본 전파기록

The Sarang 2011. 8. 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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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8.15 광복절 이었습니다. 광복이 되기 전까지 일제 치하에 있는 동안에 우리 민족은 정말 많은 침탈과 고통을 받았었죠. 특히나 관동대지진(1923년)때는 마구잡이로 살해 당했던 시기 였습니다. 

그 관동대지진 때 생겨난 흥미로운 일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관동 대지진은 일본에서 일어난 전례 없는 재해였고, 이래저래 물자가 부족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식량이 그랬지요. 그 즈음에 정착된 요리가 몇 가지가 있는데 오코노미야키와 내장(곱창)요리 입니다.
 

오코노미야키는 기존에 화과자의 일종에서 우리나라의 빈대떡과 같이 발전했다가 관동대지진때 물자부족으로 서양에서 들여온 각종 소스를 결합해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오코노미야키가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요리는 앞서 말씀드린 내장요리 입니다. 사실 관동 대지진 이전에는 일본에서는 내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장을 요리할 수 있는 기술은 통상 유목민족의 후예들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섬나라 일본에서 그런것을 할리가 없지요. 

특히나 에도시대의 일본에서는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였던 이유로 공식적으로 육식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1871년 메이지 유신 4년째 되는 해 12월에 천황은 스스로 육식을 실시하고 금지령을 해제했는데요, 이는 당시의 서양인이 튼튼한 육체와 발달한 지적 능력을 가진 것은 육식을 한 덕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쌀은 자연친화적인 음식이고 일본인은 서양인에 비해 결코 야만적이지 않으므로 육식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20세기 초반까지 육식과 밀가루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는 일본인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강제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온 조선인들이 현지인이 먹지 않고 버린 소나 돼지의 내장을 구워 먹는 장면이 목격되기 사작했고, 육식이 완전히 보편화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눈에 내장을 구워 먹는 조선인의 모습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죠. 


일본인들은 동물 내장을 가리켜 ‘호루몬(ホルモン)’이라고 한답니다. 특히 재일교포 1세대들이 잘 먹는데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해져  ‘호루몬’이라는 말은 조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섬나라 몽키놈들이..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고된 노동을 마치고 소주로 몸을 추스를 때 내장은 가장 좋은 안주로 내장을 구워 먹는 ‘호루몬야키(ホルモン燒き)’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내장을 꼬치에 꿰어 말아 숯불에 구워 먹는 ‘구시야키(串燒き)’는 단연 술안주의 으뜸으로 서민의 인기를 누렸고, 지금도 후지산 관광지나 마쓰리를 하는 신사 앞, 혹은 도시의 뒷골목 군데군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술집이 바로 ‘야키도리집(燒鳥の屋)’이라고 합니다.




이 야키도리가 알고 보면 호루몬야키에서 진화한 음식... 곧 우리가 전해준 음식인 것이지요.

참고로 꼬치음식도 일본에서는 오래된 음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원은 무사들의 전성시대인 18세기 일본의 에도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당시 서민의 본업은 벼농사! 그런데 이들의 천적인 참새가 늘 골치거리 였었죠. 가뜩이나 먹을것이 귀한 시절에 참새가 벼농사를 망치고 있으니 가만히 둘리 없지요. 무사도를 발휘(?)해서 참새를 마구 잡기 시작했는데, 그 참새를 버리기도 그렇고 먹을것도 없고 해서 논밭주변에 나뭇가지에 참새를 꿰어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일본에 꼬치가 생겨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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